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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life

[매그나칩반도체]퇴사후기

혹자는 만약 내 글을 본다면 노예근성에 찌들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직업에 대한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본인의 선택이니까. 다만 나는 직업에서 얻는 성취가 큰 사람이라... 그냥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나는 18년도3월부터 20년도 1월까지 22개월가량 근무를 했었다.
흔히 PI로 불리는 직무를 했었고, 직무에 대한 정리를 하려고 했으나, 뭔가 내가 뭘 안다고 적나 싶기도 해서 그냥 사회생활을 2년 가까이하며 느꼈던 점들에 대해서 정리하려 한다.
사실 회사를 2년도 되지 않아 퇴사를 하는 것에 나는 많은 고민을 했었다.
먼저 사회적으로 지금 취직이 쉬운 세대가 아닌데 퇴사하는 게 맞나부터, 내가 사회생활을 못해서 퇴사를 하는 것인가 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일 아닐 것 같다 분명히 시간이 지나니 그 우울했던 재수생활을 웃으며 얘기하는 것같이!
 
먼저, 분명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많이 들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기만 했으면 퇴사 할리가 없지 않은가?
 
얼마 전엔 다른 팀에 아는 동생도 퇴사를 한다는 연락을 들었다. 나이는 1살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그냥 좋은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나는 내가 인생에서 25년간 겪은 일들보다 어쩌면 2년간 회사생활을 통해서 배운 게 농도가 더 짙은 거 같다고,
네가 나가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다 두고 배웠던 것, 좋았던 기억, 성취했던 기억은 다 챙겨서 앞으로 하는 일에 다 써먹었으면 좋겠다고
 
너무 오그라들면서도 어린 나이에 첫 입사와 퇴사를 한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나도 조금은 알기에 그런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친구도 나에게 여긴 좋은 기억이라며 고맙다고 했다. 퇴사를 한지 약 10달 정도 된 지금도 회사 다닐 때의 일들이 선명하고 가끔 그리울 때도 있다.
 
먼저 사회생활을 처음 했던 나에게 힘들었지만 고마운 곳이었다.
내가 입사할 당시 중간 계층이 많이 없던 곳으로 나 또한 사수와 나이 차이가 꽤 났었다. 특히 석사를 선호하는 회사 분위기에 나는 더 어린 여사원이었다.(남자 여자를 나누기 정말 싫지만 반도체 산업 특성상 여자 사원이 많이 없어서 더 튀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배려도 받았고, 많은 관심도 받았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고 울고 정말 난리였다. ㅋㅋ(부모님, 남자 친구, 내 동기들은 이 글을 보면 빵 터질 거다 ㅋㅋㅋㅋ 사회 초년생인 나는 너무 징징댔어서)
하지만 반대로 가끔 나의 실수를 그냥 덮어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내가 씩씩해서 너무 좋다는 분들도 있었다. 지금 남는 기억은 나에게 잘해주신 분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럼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뭘 배웠을까 고민했다 
물론 반도체 산업의 돌아가는 시스템도 배우고, 공정에 대한 지식도 조금은 늘었겠지만 그런 것들을 제외해놓고도 많은 것들을 배웠다.
 
먼저 정말 많은 사람이 있음을 배웠다.
일을 잘하고 못하는 사람도, 말을 함부로 하거나 조심해서 하는 사람도, 성실하거나 뺀질거리는 사람도, 꼼꼼하거나 덤벙대는 사람도...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지키기 위해선 사람은 전부 다양하다는 것을 인지했어야 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혼이 나고 나면 전부 내 탓 인 것처럼 너무 속상하고 그만두고 싶었던 거 같다.
그러다 일을 조금씩 배워가고 일머리도 조금씩 늘고 나니, 사람들이 조금씩 보였다.
이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까지 화낼게 아닌데 왜 이렇게 말을 하지?
 
1. 내가 말단 사원이니 그렇게 대해도 된다는 건가?
2. 이 사람 입장에선 이게 이렇게 화낼 일인가?
3. 다른 데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을까?
이 세 가지 중에 나머지 일들이라면 고려하지 않기로 했고, 2번이 아닐까 집에 가서는 많은 복기를 해보고 2번이라면 다음부턴 내가 그 부분에서 더 신경 써야겠다 하고 다짐했다. 
대신 1,3번이라고 판단이 들었을 땐 그게 몇 번이고 반복이 되면 더 이상 나도 크게 상처 받지 않고
협조하는 것에도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야근이나 추가적인 노력을 들이지는 않았다). 그리곤 그냥 내가 가진 상식과 다른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니 조금씩 괜찮았던 것 같다.
내가 힘든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정리해가면서 조금씩 나를 지키려 했던 것 같다.
정말 가끔가다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건 내 몫이 아녔기에 그냥 속이 상한 채로 뒀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사람마다 각자 다른 포인트에서 배우고자 하는 점을 많이 찾으려고 했다.
 
우리 팀은 daily meeting이 있어서 매일 9시에 미팅을 했었다. 그날 글 날 했던 일, 할 일을 보고하고 팀장님께 방향성을 확인받는 게 목적이었는데 나에게 이런 매일 겪는 미팅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팀장님의 일 스타일이 매우 깔끔하고 논리적이라 생각해서 평소에 많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말 몇 달간은 매일 혼났던 거 같다. 왜 고민을 안 하냐 왜 사고를 치냐 네가 단순 노동하려고 회사 왔냐 등 진짜 많이 혼났다.
하지만 그때 혼난 것들을 다이어리에 꾸역꾸역 적어가면서 하나씩 고쳐갔다. 점점 혼나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그렇게 자료가 깔끔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일하는 데에 속도도 붙어서 일이 꽤 재미있었던 것 같다.
또, 매일 미팅을 하니 다른 사람들이 지적받거나 고민하는 것들을 보면서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겠다 이런 고민을 매일 하는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원래 엄청 덜렁이는 성격이었는데, 정말 꼼꼼한 책임님을 보면서 내 일 스타일을 많이 바꿔 나갔던 거 같다.
일 뿐만 아니라 선배들을 보면서 말을 어떻게 하면 매너 있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겠다. 어떻게 하면 후배 입장에서는 감동받는 포인트가 되겠다. 등 인간적으로도 많이 배우려고 하고 배웠던 것 같다.
 
그다음은 모든 일에 갑과 을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갑질을 해도 된다 가아니라, 더 급한 팀이 있다 모든 일에는 모든 팀이 각자의 R&R이 있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바로는 내가 갑일 때 갑질을 하지 않으면 내가 을일 때 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 친구분 중에 오래 etch engineer로 하이닉스에서 근무하신 분이 있는데, 모든 일은 give and take이니 명심하고 살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다른 팀의 일이라도 한번 야근하고 한번 정성껏 대응해주면, 상대방도 나에게 그렇게 해줄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음엔 나도 똑같이 대응해주면 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어차피 회사일인데 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나 라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냥 그건 사람 스타일인 거 같다. 나는 그냥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수석님. 그런데~"하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아부성 멘트도 많았다.(진심으로 하는 말이 더 많았다.) 그렇게 했을 때 내 일의 효율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나의 경우는 그랬다. 대학생 때는 이런 건 마냥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뭔가 내가 많이 바뀐 건가...? ㅋㅋㅋㅋㅋ
 
마지막으로 회사는 어쩔 수 없이 평판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퇴사한 회사를 어느 정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대기업도 아니고 지금 시점에서는 또 분사까지 되었으니, 한편으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무례하긴 하지만 굳이 상대할 필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퇴사하는 게 너무 아까웠다. 그간 회사에서 열심히 좋은 이미지를 쌓으려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나는 실력을 쌓아서 여기저기 몸값을 올리며 이직하는 삶을 살고 싶다 생각했다. 동종업계에선 평판이 엄청 중요했다. 특히 Power MOSFET을 다루는 회사는 몇 군데가 없어서 인력이 많이 돌고 돈다고 했기에 나는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진 사원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말을 유창하게 하거나 지식적으로 많이 알거나 하지 못했던 나는 배운 일을 잘하고 빨리 처리해주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다른 팀과 함께 일할게 꽤 많았는데, 그런 일들은 주중 9시에서 5시 사이에 끝내야 한다. 특히 현장은 교대 시간도 있고, 또 공정팀도 적어도 3시까지는 요청드려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런 일들을 하고 나면 내 일들은 자연스럽게 야근이나 새벽 출근으로 밀렸다. (어떤 이들은 내가 그냥 일을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일을 쳐냈다고 생각한다. 일을 못하는데 책임감까지 없다면 최악 아니겠는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 입에 열심히 하는 사원으로 오르내리게 된다. 팀 내에서도 처음에 나는 좀 인정받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많이 노력한 부분들을 자꾸 비춰주면서 팀 내에서도 어느새 자리를 잡았던 것 같다.
 
회사 밖에선 방청소도 제대로 안 하는 내가 회사에서는 그래도 성실하려고 참 노력했었고 그게 내가 좋은 이미지를 잡는데 도움을 많이 줬던 것 같다. 물론 사람들이 나에게 일 잘한다, 성실하다, 이해가 빨라 좋다 하는 말이 그냥 앞에서 입에 발린 소리라 생각할 수 있다(몇몇은 그냥 하는 소리라고 나를 놀렸다ㅋㅋㅋㅋㅋ). 그런데 굳이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나보다 직급 낮은 사람에게 할 필요는 없는 말을 했을까? 나는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잘했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굳이 야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좋은 분위기를 팀에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게 모두 이 말에 포함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프레임에서 못 벗어나서 퇴사 날까지 납땜을 3시인가? 4시까지 하다가 헐레벌떡 퇴사 메일을 쓰고 6시가 넘은 시간에 퇴근했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왜 퇴사했을까
난 너무 어정쩡한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먼저 양산 제품 위주로 하다 보니 일이 루틴 해졌고, 익숙해진 일은 어느새 실증이 좀 났던 것 같다. 공정에 대해서 공부할게 한가득이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을 내서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고, 매일 욕심만 부리면서 스스로가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더 열심히 일하고 많이 아는 것 같은데 하는 질투도 났었다. 하지만 누굴 원망하겠는가? 내가 인적성을 못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현실이 조금은 미웠던 것 같다. 대기업에 미련이 없을 만큼 해봤어야 하는데 하면서... 
 
사실 나는 학업에 그렇게 뜻이 있던 대학생도 아니었고, 대학원은 4학년 2학기에 아예 내 선택지에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터득할 줄 아는 부분이 꼭 필요했고, 나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애써 회피했다(모든 회사 일이 아는 게 없어도 일은 그냥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다. 사원 따리니까). 그렇게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를 고르게 되었다. 이 선택이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퇴사할 때 나를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응원하는 사람도 걱정하는 사람도 다들 다른 반응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고마운 마음만 받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비아냥 거리는 사람의 심리는 알 수 없다 에라이). 그리고 팀장님이 회사를 다니며 병행하는 건 어떠냐고 하셨던 말이 내가 나갔을 때의 공백 때문이라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나를 어느 정도 걱정하셔서 그런 말을 하셨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글을 써본 건 내가 일을 잘했다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독이기 위해 정리해봤다.
취준도, 학생 신분도... 항상 앞이 안 보이는 길은 막막하다. (그래서 퇴사는 참 어려운 결심인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내년 취준에 나의 2년 경력은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나는 가끔 불안감을 느끼고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퇴사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한다.
그런 나에게, 석사 생활 2년 별거 아니라고 토닥이고 싶어서 짧고 굵었던 나의 첫 회사에서의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스쳐 지나간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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